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임스 캘러헌 (문단 편집) === 총리 시기 === 그러던 중 1976년 해럴드 윌슨 총리가 뜬금없이 사임을 선언해 버린다.[* 공식적인 이유로는 '60세 때 은퇴하리라 마음먹고 있었고 정신적으로 지쳤기 때문이다'이지만,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적다. 세간에서는 '[[영국병|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는 경제 문제]]에 질려서 [[탈주]]해버린 거 아닐까'라는 시각이 우세하다. [[영어 위키백과]]에 따르면 건강검진에서 [[대장암]] 및 [[치매]] 징후를 받은 것이 원인이라고도 한다. [[더 크라운]]에서도 여왕과 접견 때 치매 때문에 사임하는 것으로 나온다.] 그리고 윌슨의 후임을 선출하기 위한 전당대회에서 마침내 캘러헌이 영국의 70대 총리로 선출된다. 하지만 총리가 된 기쁨은 잠시, 캘러헌에게는 해결해야 할 온갖 난제가 쌓여있었다. [[영국병]]이라고 불리던 고 인플레이션, 고 실업률의 상황은 해결될 기미가 안보였으며 [[노조]]들은 기득권화되어서 툭하면 정부의 경제 정책에 반발하는 파업을 일으켜 국가 경제를 마비 상태로 몰아넣었다. 다른 서유럽도 노조의 규모가 엄청나서 노동자들이 마음 먹고 파업을 일으키면 국가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었지만, 그래도 중앙노총이 있고 이들과 협상을 하면 됐다. 반면 영국에는 직종별로 세분화된 노조를 하나로 묶어주는 중앙노총이 없었고, 정부가 개별 노조 하나 하나와 다 협상을 해야 했다. ~~미션 임파서블~~ 한편 [[스코틀랜드]]에서는 [[스코틀랜드 국민당]](SNP)이 [[잉글랜드]]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였으며[* 스코틀랜드 입장에서는 이 시기 막 [[북해]]에서 채굴되기 시작한 [[유전]]이 자신들보다도 잉글랜드를 먹여살리는 현실이 못마땅했다.] [[웨일스]]에서도 분리 운동이 일어나 의회에 처음으로 분리주의 정당들이 진출하기에 이른다. [[북아일랜드]]에서는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[[북아일랜드 분쟁]]이 격화되어 1970년대 후반 [[IRA]]의 테러 등으로 인하여 한 해에만 수백 명의 영국인들이 목숨을 잃었다. 이런 상황에서 캘러헌 내각은 북아일랜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국민들의 신망을 잃게 된다. 그리고 1978년 '[[불만의 겨울]]'(Winter of Discontent)이 캘러헌의 정치적 생명을 끝장내 버린다. 불황으로 인하여 캘러헌 내각이 임금 동결 또는 소규모의 인상을 지시하자 노조 측에서 반발하여 대규모 파업을 일으킨 것. 이로 인해 1979년 3월에 단 1표 차이로 [[내각불신임결의]]가 통과되어 조기 총선이 실시된다. 1979년 5월 총선에서 노동당은 "Labours don't work"라는 성공적인 캠페인을 펼친 [[마거릿 대처]]가 이끄는 보수당에 참패를 당하였고 캘러헌은 총리직에서 내려오게 된다. 한편 당시 불신임결의안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게 [[스코틀랜드 국민당|SNP]]인데 정작 총선에서는 의석들을 거의 잃었다. 당시 정가에 "사상 처음으로 [[자폭|칠면조들이 추수감사절을 앞당기도록 투표했다]]"는 농담이 돌정도로 어이없는 일이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